모든 인간들에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완벽한 이상적인 세계’라는 어떤 모티프에 대한 표상들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경향을 무의식 속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토피아’라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모티프는 ‘원형이미지(archetype image)’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이미지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 속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시대에서도 이 시대에 맞는 유토피아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부조화와 어긋남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예술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예술이 감성적인 인식의 분야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기초하는 유토피아라는 원형이미지는 예술적인 언어로써만 보다 잘 표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대에 적합한 표현방식을 혼성적 표현으로 보고서, 유토피아라는 원형이미지를 우리 시대에 맞는 혼성적 표현을 통하여 작품 속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시기별 원형이미지의 순환과 재료의 다양성, 표현매체의 확장과 대상간의 공존은 바탕에 깔려 있는 공통된 요소로서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실험과정이 단순히 유토피아적 공간을 사유하고 형성하는 것만이 아닌, 오늘날의 미술에서 확장과 전이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또한 나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발현되어온 유토피아적 공간이 순환한다는 의미도 갖는다고 하겠다.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해온 < 혼자놀다 시리즈 >의 유희적 놀이 공간이 지닌 다원적이고 자유로운 표현과 매체 간의 혼성적 결합에서 나타나는 원형이미지는 과거의 기억과 오늘날의 경험 및 체험을 유토피아라는 동일한 주제로 환원시킬 수 있으며, 작업의 개념을 함축하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공간의 원형이미지가 다양한 실험으로 표현영역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작업의 개념이 확장되는 것은 사회적인 문맥 내에서 예술을 재생시키고 순환시키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예술의 영역과 생활의 영역 사이에서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 지금의 포스트모던적인 시대의 혼성적 표현형식과 유토피아라는 내용이 융합됨으로써 현실에서 실현된 유토피아를 만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창작 활동과 실재 삶과의 관계를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화폭 안과 밖에서 현대적이며 회화적인 표현 형식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하고 작가로서의 또 다른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발현해내고자 한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으로 점철된 현실공간과 가상현실의 혼돈 속에서 이상향이 실현되기를 바라고자 하며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현실에서 실현되는 유토피아적 공간의 연구는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로서 현대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실제로 인지하고 경험하는 공간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실화된 이상의 현존성이 오늘날의 미술의 또 다른 지표가 될 것으로 본다.
플라톤적인 원형은 모든 사물에 공통적인, 본질적인 형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서 사물이 세계에 나타나기 이전에 정신 안에 내재된 순전히 정신적인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작가가 제시한 원형은 인간 내부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모태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작가가 작품 속에서 형상화한 이미지는 원형의 의식화 내지는 원형이미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 본인의 회화공간의 기본적인 축을 이루고 있는 원형적 작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에 표현된 유토피아적 공간의 현실화된 이상향은 무의식적 원형의 의식화라 할수 있으며, 이것은 단순한 현실도피로서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토대로 발언하는 솔직한 내면적 현실의 예술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적인 예술은 궁극적으로 색(色)과 공(空), 실(實)과 허(虛)가 순환하는 동일한 공간을 지향한다. 작가의 작품의 색과 형태에서 나타나는 이런 순환적 흐름은 관람자가 그림을 바라보고 감상하면서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 등을 심도 있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작품에 나타난 회화적 원형의 표현은 유토피아의 형성(formation)에서 이것의 변형 혹은 변이(transformation)로, 그리고 나아가 탈형(deformation)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다시금 승화되어 재형성(reformation)되고 있으니, 처음의 것과 나중의 것이 재구축(reconstruction)이라는 일련의 연결고리를 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야기꺼리나 의미라는 형태가 구성되는 듯 하다가 해체되고 다시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회화적인 원형개념의 특성을 융의 원형이론을 통해 분석해보면 자아(Ego), 가면(Persona), 그림자(Shadow), 아니마/ 아니무스(Anima/ Animus)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자아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소질(dispositions héritées : 이것은 그의 성격을 형성하게 한다)과 무의적으로 얻어진 인상(impressions)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원초적인 유전 요소들과 자아가 형성되는 동안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내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가면은 자아와 외부세계의 연결 기능을 가지며 주어진 사회적 목적에 부응하여 자신을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림자는 항상 빛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으로 열등하고 죄책감을 갖게 하는 인격의 부분으로서 그림자를 가진다. 그것은 그만큼 자아가 강한 의식성을 가지고 개별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자주 그 안에서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이 짙게 매어 어둡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의식에 있는 인격의 특성인데 간단히 말해서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 한다. 이것은 남성적, 여성적이란 사회적인 통념을 넘어선 보편적이고 원초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일관된 기법이나 표현형식을 지속하거나 업그레이드시키기보다는 다양한 형식을 동시대적 상황에 맞춰 조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영상설치작품으로 졸업 작품을 진행할 만큼 다양한 오브제와 매체를 다원적인 표현형식으로 구사해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 평면과 입체의 결합, 영상과 설치 등과 같은 확장된 양상으로 작업을 표현하였고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작업인 < 혼자놀다 >시리즈는 이질적인 재료의 사용과 이미지의 조합, 디지털프린트와 페인팅의 결합 등의 작업형식으로 나타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디지털과 페인팅의 결합, 이질적 이미지의 결합 등의 혼성적 표현의 실험들은 작업의 방향을 주제와 내용에 따라 표현 형식을 달리하게 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작품이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있음을 말하며, 탈 장르적 성격과 혼합적인 매체의 사용이 동시대적 미술의 경향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원형이미지를 통한 유토피아적 공간의 혼성적 표현 양상이 연대기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며, 주제와 표현방법이 시간을 가로질러서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2000년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품의 내용과 표현형식은 유토피아라는 하나의 일관된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주요 특성은 매체, 장르, 기법 등 작업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혼성적 표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토피아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소재가 되는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안에서 공존하며, 이것들을 표현하는 매체 역시 이질적이지만 함께 융합된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은 혼성의 개념을 다양한 각도에서 적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작가는 자연 그대로의 이미지를 숭고하게 여기고 그 장소에 또 다른 이야기를 설정하는 작업과정에 앞서 2000년대 초반부터 작가작업의 전개과정에서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유희적 사유인 ‘놀이’이다. 하얀 캔버스를 벗어나 연출과정을 드로잉하고 스텝들과 논의하면서 작가 스스로의 욕구분출을 위해 자연 속에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던 예술적 이상들을 현실에 녹여내는 것이며 쉽게 바라만보고 지나쳤던 자연의 형상들이 작가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작품들은 미디어 영역의 사진 기술이라는 매체를 일러스트, 포토샵 등의 웹 프로그램과 결합하고 전위적인 예술형식을 직·간접적으로 혼성하여 놀이로 승화시킨, 미디어놀이라는 표현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 놀이는 자유로움과 상호 관계적 특성을 지니면서 억압되고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세계와의 구별을 명시하는 가상현실 속 유토피아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무의식에 잠재된 이상적 형태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자연으로부터 직접 경험했던 이미지들을 차용한다. 보고 느낀 것을 차용하여 치환하기 위해서는 직접 관찰해보고 재현할 수 있는 즐거운 상상을 펼칠 능력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잔상이나 형상을 눈에 보이게 시각화해서 나타내는 것은 일상에서 사물을 보는 순간적인 관찰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며 창의적인 생각을 구상하는데 중시된다. 그래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 인간, 공간 이미지를 차용하여 치환한다. 치환(置換)이란 명사로서 ‘바꾸어 놓음’이라는 사전적이고 기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수학과 화학분야의 치환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 작업에서의 치환은 자연에서 차용된 이미지를 발표자의 상상력과 결합함으로써 실재하는 자연이미지는 화폭안의 차용된 이미지를 통하여 무의식에 잠재된 원형적 이미지로 바뀌어 놓이게 된다는 의미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작업은 자연의 이미지와 무의식의 원형이미지가 서로 섞여 있는 혼성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인간과 인간 등과 같은 결합은 혼성적이고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측에 보여지는 연구 작품들은의 본인의 실사 모습을 모테로 삼아 인간의 실루엣들이 원숭이, 코끼리, 쥐 등 동물과의 결합, 가상사회에 존재하는 아바타 같은 유희적 표현과 자화상적인 표현 환경의 혼성성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일상의 자연, 물질 등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무의식의 이미지로 치환하는 작업은 우리가 흔히 마주쳤던 산, 강, 나무, 풀 등에서 느껴지는 색채, 형태, 율동, 소리 등의 원초적 본능을 화폭 안으로 자리만 바꾸어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원형이미지를 가져가면서 이와 다른 자연 이미지의 차용과 결합, 색채감성의 즉흥성을 하나의 공간으로 융합하는 혼성적 표현인 것이다. 유토피아를 사유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상적 세계를 상징화하려는 본인만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소유의 충족을 넘어 일상의 공간, 현실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소통의 장소를 만들어 내기 위한, 즉 현실화 된 이상 세계를 경험하는데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하는 우리는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삶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이렇듯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의 반복적인 형상들은 아무런 사유나 의식 없이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이야기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출발선상에 두고 있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자연, 산책이나 여행을 하며 마주쳤던 풍경, 수면을 통해 바라본 꿈 속 이야기 그리고 시각적으로 남아 있는 옛 기억들은 내가 살아온 일상의 내용이고 작품 소재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한다. 그저 흔하게 반복적으로 보고 기억해 왔던 형상이나 내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인간이 사유하고자 했던 공간을 산책하는 것은 자율성이 담보된 예술의 열린 구조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초석이 된다. 이에 작가는 실재 경험하고 느낀 풍경을 이상적 공간에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소재의 원형을 모태로 삼아 일상의 기억과 느낌들을 주관적인 시각의 언어로 바꾸어 혼성적으로 표현하는 치환의 작업인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 등의 관계와 삶 속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는 모습을 꽃 패턴의 군집으로 나타내면서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불안전한 현실을 안전한 현실로 견뎌내고자 하는 나만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동시에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회화의 표현 형식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의 욕망이 해소 되는 장소로서의 유토피아, 즉 실재로 현실화된 이상으로 이어가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패턴을 만드는 것은 어떤 구조나 기능을 결합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 조합하거나 반복하는 것이다. 그만큼 패턴을 발견하거나 만든다는 것은 인식하고 해석하고 연상하는 능력과 더불어 앞으로 발생할 일을 예측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이미지나 사물의 형태를 볼 때 시각적으로 매력이 끌리는 부분부터 관찰하고, 시선의 움직임을 따라 대칭이나 비례, 자기만의 윤곽을 상상해서 관찰하며 바라본다. 이 관찰은 전체적인 이미지형상으로 하나의 물질을 포착하기도 하고, 또는 어떠한 부분이나 지점에 자리한 추상적인 감각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에 작가의 단순한 반복 패턴은 사물의 테두리 속에서 표면을 채우고 형상을 만들며 화면을 지배한다. 이런 반복은 동일한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를 가지면서 또 다른 의미를 구성하고, 화면의 표면상에 보이는 단순한 시각적 표현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반복적 패턴 행위는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화하는 과정에 접근해 가는 정신적 의미를 함께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의 작품은 통해 개별적으로 축적해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패턴의 반복과 도안화 된 선적(線的)인 장식성을 드려내면서 점점 회화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작품의 특징으로 한국화적이고 동양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이유는 아크릴과 유화물감 그리고 섬유물감으로 알려진 구타재료를 사용하여 선을 강조하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색채는 사람을 움직이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 만큼 색채의 감정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찰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민감하고 섬세한 반응을 갖는다. 모든 물체는 개개의 색을 지니고 있으며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고 공통된 현상도 있으나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이 많다. 색에는 흥분을 일으키게 하는 적극적 색채와 차분하고 가라앉게 하는 소극적 색채가 있듯이 색채들 사이에서 오는 차가움과 따뜻함, 가벼움과 무거움, 흥분과 침착, 진출과 후퇴 등의 느낌들은 인간의 색채감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또한, 색채는 어느 정도 우리사회에서 문화적 공통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본질은 자기스스로 반복적인 실습과 체험을 통해 개별적으로 축적해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얻어진 색채의 관계를 이성적 표현이라 하고 사람마다 갖고 있는 환경에 따라 나타나는 우연적이며 즉흥적으로 나타내는 색채의 관계를 감성적 표현이라고 정의 해 본다. 이것은 감성이 이성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감성에 봉사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판단과 행동의 결정은 이성이 아니고 비이성적인 어떤 것, 감성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나타난 색감은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즉흥적인 감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형상을 둘러싸는 내적 심상을 전달하고 있다. 순수회화에서 색채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논리적인 생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물이고 작가의 주관적 표현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색은 관람객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통로이고 내적인 심상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특별한 매개체인 것이다. 작품의 색들은 중첩되어진 배경 그리고 패턴의 색상과 결합되어 미묘한 차이를 지닌 색채로 나타난다. 여기서 색을 선택하는 과정은 무의식적인 현상이지만 의도와 맞는 지점을 찾을 수도 있으며 원초적 감각의 내면세계가 나타난 표면은 색채의 영향에 따라 상호작용하며 독립적인 것이다. 원형적 심상과 감각적인 색채의 상호관계는 내면의식을 연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작품 안에서 이미지와 색채의 상호작용은 혼성된 차이와 질료의 혼합정도에 따라 주관적 감정을 전달하는 동시에 시각화를 위한 상징적 형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덧붙여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섬세하면서도 색채에 나타난 혼성적 감성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이 제작한 작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쩌면 남성으로서의 외형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성을 작업이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작가가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남성성에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여성성의 결합, 즉 원형이미지의 회화적 표현의 특성 중 하나인 아니마(anima)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작가의 즉흥적인 색채감성이 화면 안에서 혼성적인 색채로 형상화 되면서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유토피아적 공간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